나의 사소한 여행 이야기

여행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일상을 여행하면서도 여행을 염원한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떠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여행 이야기.

가끔씩 수필

불암산

OriBurii 2024. 9. 8. 21:51

나는 지구과학을 전공한다. 
 
수능을 준비할 때부터 지구과학에 흥미를 느꼈고 본의 아니게 지구과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관련 과목 수강 후 고민에 빠졌다. 암석역학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암석, 평생에 한 번은 내뱉었을 말이지만, 평생에 한 번도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을 말이다. 
나는 그런 암석이 재밌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항공우주공학이 그 자체로 좋았다기 보단 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미항공우주국)에서 지구과학과 천문학을 풀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항공우주 플랫폼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위성지구과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또는 그런 생각을 달고 살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와닿는다. 지금까지, 그 어떤 실패도 그리고 그 어떤 성공도 나를 위한 일이었던 것 같다. 돌고 돌아 결국은 어릴 때 꿈꿔왔던 학문을 공부하게 된 것을 보면...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분야를 접하게 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인 고등 지구과학을 떠올리게 되었다. 
2018학년도 지구과학1 과정에는 아름다운 한반도라는 단원이 있다. 서울의 불암산이 소개되는데,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불암산이 그렇게 가보고 싶었다. 2018년 내가 무심하게 넘겼던 나의 여행을 오늘 시작했다. 
 
불암산 등산 코스는 2km로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가파른 언덕과 험한 산길로 등산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Fig.1 불암산 정상

 
불암산 정상 부근은 거대한 암반들로 이루어져 온몸으로 등반해야 했다. 분명 초보자용 등산로라고 알고 있었는데 쉽지 않았다. 
 
불암산 정상에는 태극기가 높이 솟아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높이 솟은 태극기를 보고 왜 가슴이 웅장해지는 걸까?
우리 국가에 대한 순수한 사랑일까,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에 의한 애국심일까?
어려서부터 우리에게 애국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국가 유지에 필연적이라서 정당화된 일일까?
아무튼, 높이 솟은 태극기는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Fig.1은 함께 간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이지만, 허락을 구하지 않아 친구의 모습은 AI로 지웠다.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Fig.2 불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불암산 정상에서 본 서울은 Fig.2와 같았다. 
날씨는 좋았지만, 우리 눈은 대기보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대기보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근감이 살아 내가 사는 도시가 더 웅장해 보인 것 같다.
 
내가 사는 서울을 뒤돌아본 지 5년이 넘은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곳에 나는 이토록 무심했을까... 
일상을 떠나 여행을 했지만, 나는 내가 살아가는 동네를 찾았다. 나와 함께 정상에 올라온 친구도 고향을 찾았다. 우리는 일상을 그토록 미워하면서도 우리의 일상을 사랑하는 것 같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우리 일상의 익숙함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비로소 일상에서 벗어나야 일상을 보내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닌데, 그 익숙함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잊고 사는 것이 조금은 속상했다.
 
산에 함께 온 친구들은 만난 지 두 달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산에 가자는 제안을 나보다도 좋아해 주었다. 
나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가끔은 친구가 너무 가까워져 친구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렇게 가깝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나를 그렇게 순수하게 친구로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옆에 있어준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미안한 친구들이 너무 많다. 아직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
 
아무튼, 내 주변엔 나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러면서도 긴 시간 그들에게 무심했던 내가 부끄럽다.
 
그렇게 등산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상을 맞기 전에 지난 시간 동안 고생한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Fig.3 집 앞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에게 삼겹살과 소주를 사주었다. 
우리는 오늘도 사회생활을 한다. 친구와 술 한잔, 선배와 술 한잔, 직장 상사와 술 한잔...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위로의 한 잔을 건넨 적이 있던가?
 
나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술 한 잔을 건넸다. 
고생 많았다고, 이번 주도 고생하자고...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마쳤다. 
 
다음 주는 혼자 박물관에 가봐야겠다. 박물관에 누군가와 함께 간다는 것은 나의 호기심과 대화를 나누기에 눈치도 보이고 시간도 촉박했던 것 같다.
 
다음 주도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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