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과학과 공학을 좋아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이 신기했고,
그런 현상들을 이용해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항공우주공학은 하늘과 우주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항공우주공학의 어떤 부분이 매력으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다만, 누군가를 짝사랑하듯 그 이름을 들으면 심장이 뛴다.
비행기를 유난히도 좋아했기 때문에 종종 항공우주박물관을 가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별 다른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비행기 모형을 훑어보고 나가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주 가보았지만, 구석구석 둘러보지 못한 국립항공박물관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나의 순수한 호기심과 비행기에 대한 나의 마음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국립항공박물관은 무료입장이면서도 주차비가 비싸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도착하고 나니 주차 공간이 많지 않았다. 연휴를 맞아 많은 아이들이 비행기를 보러 몰려온 듯했다.
처음에는 많은 아이들이 나의 사색을 방해할 것이 걱정됐다.
하지만, 박물관은 나보다는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렇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나의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적적하고 차분한 요즘의 나는, 생각 없이 뛰어 놀 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Fig.1은 1층에 전시된 기념사진용 비행기다. 아이들은 비행기에 탑승하여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어린이들에 대한 부러움은 잠시 뒤로 하고 나는 항공 역사관으로 들어갔다.
역사관에는 항공우주공학개론에서 배운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대략 2년 전(2022년)에 들었던 수업인데 벌써 그때가 그립다.
케이시의 '가을밤 떠난 너'를 들으며 가을의 시원한 새벽공기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항공우주공학과의 전공과목들을 공부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사색에 잠겨 역사관을 음미하던 중 나의 사색을 깨고 이목을 끈 사진이 있었다.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의 비행사진이다.
오토 릴리엔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학자다.
오토 릴리엔탈은 1800년대 후반 사람으로 직접 만든 글라이더를 이용하여 수천 번의 비행을 했다. 그렇게 수많은 비행과 비행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그의 마지막 비행 도중 사망하였다.
그리고 그의 연구는 후대에 비행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구조를 남기고 항공역사의 시작을 앞당길 수 있었다.
나의 연구는 너무 보잘것없지만, 내가 나의 연구를 돌아보면 언제나 자존감이 떨어지지만, 나의 연구가 하루하루 쌓여 오토 릴리엔탈처럼 의미 있는 후속연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연구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나도 저 사람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목숨 걸 수 있을까..?
그런 이유다. 오토 릴리엔탈은 그 명성이 라이트형제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낙담할 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한참을 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년 전(2022년)만 해도 나는 현대 항공기만을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다시 오니 모든 비행기가 각자의 사연이 있었고 그래서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요즘에 만들어진 비행기처럼 인기가 많지는 않지만, 당시의 기술과 시대적 상황에서는 각자 최고의 비행기였다.
우리도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나도 저렇게 되리라 염원하지만 우리도 어쩌면 지금 우리 자리에서 각자 최고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구를 부러워할 것도 낙담할 것도 없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맞는 다음 자리로 오늘도 한 걸음 걸어가면 되는 것 같다.
그런 생각들로 항공 역사관을 지나갔다. 위층으로 올라가 조금 걷다 보니 아이들이 공항 시스템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조금 걷다 보니 김포국제공항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생 때, 나는 비행기 모형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일반적인 아이들답지 않게 전투기보다 민항기를 좋아했던 나는 언젠가 나도 집에 작은 공항을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
언젠가부터 비행기를 사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졌고 그렇게 나의 작은 꿈도 사라지게 되었다.
공항 모형을 보니 중학생 때가 떠올랐다. 내가 모은 비행기들을 마치 항공기 박물관인 것처럼 꾸며 놓았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나의 꿈을 찾아 인공위성 원격탐사를 공부하고 있다. 나의 연구는 볼품없지만 나는 행복하다.
그런데, 지금보다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고 막연하게 꿈꾸던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행복한 추억들이 지금의 내가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어차피 열심히 안 할 거 공부보다는 추억을 쌓을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직도,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유체 속을 미끄러지는 비행기를 보면 항공기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이 떠오르며 설레인다.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발을 디딘 나의 상황이 조금은 서운하다.
항공공학의 실체를 알기에 나는, 서운함은 뒤로하고 오늘도 가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듯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일은 무척 다른 것 같다.
멀리 관망하기에 좋을 수가 있고, 내가 직접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을 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관망하기로 했다.
방향을 바꾸는 순간 이 모든 설렘이 후회와 스트레스로 변할 것을 알기에..
나는 그냥 그렇게 서운하기로 했다.
설레던 여행의 시작과는 다르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나의 아프고 행복한 삶을 담은 박물관이라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그래도 항공박물관 여행 중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